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 공격에 동맹국의 군사적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한국에 병력이나 군사 협력이 요청된다면, 그 답은 분명해야 한다. 한국은 이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다. 역사적 책임과 국가의 도덕적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명확하다. 이란 공격은 방어 전쟁이 아니라 침략 전쟁의 성격을 가진다.
전쟁의 정당성은 국제법적으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자위권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가 승인한 집단적 안전보장이다. 그러나 특정 국가가 “우리의 가치와 정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국을 공격하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원칙이 아니라 강대국의 일방적 판단일 뿐이다.
이 전쟁에 동참한다면 한국은 국제 질서를 지지하는 국가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가담하는 국가가 된다.
한국은 이미 한 번 같은 선택을 한 경험이 있다. 바로 베트남전 파병이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전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경제적 보상과 동맹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도덕적 상처로 남아 있다.
전쟁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타국의 민간인이 희생된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엄격한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한다. 베트남전 파병 역시 그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또다시 제3국의 전쟁에 군사력을 보내는 선택을 한다면, 후대의 역사가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마도 그 평가는 단순할 것이다. “과거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국가.”
그러나 반대로 이 전쟁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역사적 과오를 인식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은 국가.”
또 하나의 문제는 정치적 일관성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베트남전 파병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이야기하는 흐름이 존재해 왔다. 동시에 북한이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한국이 다시 미국의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 논리는 스스로 붕괴한다. 타국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행위가 문제라면 한국 역시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게 된다.
결국 한국은 자신이 비판하던 행동을 스스로 반복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신뢰와 도덕적 정당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문제다.
이란은 한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중동 건설 붐과 에너지 공급을 통해 한국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 중 하나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적대 관계가 없는 국가를 공격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무거운 선택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동맹이 자동적인 전쟁 참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맹의 본질은 공동 방어이지 상대국의 모든 군사 행동에 무조건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특정 정치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시작되는 전쟁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이 존중해야 할 대상은 미국이라는 국가와 동맹 체제이지 특정 지도자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동맹을 맹종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전쟁은 시작되는 순간 수많은 생명을 파괴하고 그 결과는 수십 년 동안 역사 속에 남는다.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선택은 어렵지 않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반미도 아니고 동맹 파기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성숙한 국가로서 독립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한 국가가 어떤 전쟁에 참여했는가보다 어떤 전쟁을 거부했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
한국이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에 동참하는 용기가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는 용기다.
더구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국가의 정의가 될 수 없다. 트럼프의 입이 내뱉은 더러운 정의를 거부할 힘도 없다면, 차라리 국가단위를 포기하고 각 지지체 별로 원하는 국가를 선택해 자유로운 합병을 선택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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